<립반윙클의 신부 / リップヴァンウィンクルの花嫁>



* 결말등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영화 보실 분은 피해주세요 *

* 10.15~10.16 (토~일) 양일간 이화여자대학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일본에서만 상영된 스페셜 에디션을 상영한답니다.-_-;;; 현재 상영 중인 2시간 러닝타임이 아닌... 무려 60분 더 긴 3시간 버전입니다. 아래 링크 참조하시고 관심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http://www.arthousemomo.co.kr/pages/board.php?bo_table=notice&wr_id=1697 *

 

이와이 슌지가 돌아왔다.

커다란 공백을 안고 있었음에도 영화는 그 어떤 공백의 어색함도 남겨주지 않더라.

그의 공백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법도한데 이 영화는 여지껏 쭈욱- 영화를 연출해온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리고 상당히 명징하면서도 둔중한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내보인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결혼하게 될 남자 친구에게조차 숨겨온 속마음을 그녀는 SNS에 기록한다.

그녀가 자신의 보금자리인 가정에서 세상 밖으로 밀려날 때 나나미에게 위안을 준 이는 그의 가족, 남편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은 아무로(아냐노 고)다.

나나미라는 내성적이며, 일견 답답해보이기까지하는 캐릭터가 점점 조금씩 크게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되는 변화 역시 아무로의 몫이 크다.

이 영화에서 나나미를 이야기할 때 아무로라는 캐릭터를 얘기하지 않고는 이 영화를 얘기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중이 꽤 큰데, 영화 속 아무로의 직업은 우리나라로 치면 흥신소 직원 정도로 보면 될 법하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불륜 상황을 조장하여 파경에 이르도록 하거나, 결혼식 하객 대행 서비스를 관리하거나... 아이들과 시간을 정해 놀아주거나... 그러니까 돈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 상관없이 철저한 직업 정신으로 관철시킨다. - 실제로 그는 대단히 프로페셔널하다-

나나미 곁에서 가장 나나미를 잘 이해해주는 이가 아무로이며,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도 아무로이고, 그녀가 변화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준 이도 아무로다.

와이프는 그런 아무로같은 사람, 그러니까 아무런 윤리적 기준없이 철저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사람이 아니냐고 하던데, 나 역시 와이프의 생각에 공감한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로가 나나미에게 이른바 발전적 해체를 하도록 도와준 꼴이 되어버렸지만 그런 결과는 아무로가 의도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는 철저히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고 정해진 목표를 위해 나나미를 이용했던 것이고 -놀랍게도 대면할 때는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을 담아서-

사실상 정해진 파멸의 수순에서 희망의 가닥을 잡아 수렁에서 벗어난 것은 순전히, 정말 오롯이 나나미의 여리지만 단단한 캐릭터 덕분이니 말이다.

어쩌면 아무로는 그런 나나미가 대단히 흥미로웠을지도 모른다.


나나미가 기간제 교사를 맡아 수업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교실에 자신의 목소리를 힘있게 실어 내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짖궃은 아이들은 그런 그녀의 교탁 위에 마이크를 올려놓고.

어처구니없는 계략에 걸려 내몰릴 때도 그녀는 단 한번도 제대로 변명을 하지 못한다.

보는 사람이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그런 그녀가 세상으로 내몰려 아무 생각없이 거리를 걷다가 도착한 모텔에서 그 방을 청소하러온 청소업자에게 그녀는 '일거리를 찾고 있다'고 말한다.

수동적이고 소심한 그녀의 모습이 작게나마 변화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이 지점이기도 하다.

이후 영화는 곧장- 나나미의 성장 영화로 질주한다.

그녀는 아무로의 소개로 자신이 스스로 찾아낸 객실 관리업무 외에도 부업을 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결혼식 가짜 하객 일이었다.

중혼(重婚)인 남자쪽의 가짜 식구로 당일 만난 가짜 아빠, 가짜 엄마, 가짜 자매, 가짜 남동생은 그 날 일을 훌륭히 마치곤 실제 가족처럼 뒷풀이를 하고 즐겁게 웃고 그리고 헤어진다.

나나미가 영화를 통털어 가장 즐겁게 웃는 순간이 아이러니하게 이 가짜 가족과 함께 했던 순간이었다.

비록 나나미가 가짜 가족들 사이에서 가장 즐거운 웃음을 내보였다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가족의 무의미함을 드러낸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가짜 가족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한시적인 만남을 가질 뿐이니까. 만약 그 만남이 지속되고 서로에게 유대감이 생기게 되어도 그렇게 마냥 행복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SNS든 가짜 하객 서비스든 우리 현대인들이 SNS등을 통해 소통하는 방식의 피상성이다.

네트워크를 보다 견고하게 구축하려는 듯 SNS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사람들은 유대관계와 현실의 네트워크로부터 피로감을 느낀다.

역설적으로 그것이 사람들을 SNS에 더욱 집착하게 만드는 원인아닐까?

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직접적으로 유대감을 갖고 있는 이들보다 현실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난 가상의 네트워크에서 종종 위안을 얻곤 한다.

의외의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을 얻기도 하면서.

이러한 경험을 폄훼하며 '세상은 허구로 가득 차 있어'라는 말로 치부할 정도의 무의미한 현상이 아니라는거지.


나나미의 여정을 따라가면서도 이와이 슌지는 언제나처럼 이 영화에서도 죽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끝에는 따뜻한 희망을 살짝 담아 놓는다.

온갖 굴곡 끝에 단단해진 쿠로키의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죽음에 대한 일상적 공포가 내재된 일본인들에게 이와이 슌지가 전하는 희망의 방식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러다보니 1시간이 편집되어버린 국내 상영본이 아닌 온전한 3시간 상영본을 보고 싶어졌다.




*

영화 말미에 나오는 당혹스러운 촌극.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대단히 당혹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와이프는 그 영화 말미에 장면을 무척 슬프게 봤단다.

하지만 난 그 장면을 이와이 슌지가 웃으라고 넣은 장면이라고 봤다.

소통과 내재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보여주는 당혹스러운 감정들이니 난 그걸 웃으라고 넣은 장면이라 생각한거지.



**

쿠로키 하루를 참... 많이 보게 되는데,

난 한번도 쿠로키 하루를 '예쁘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매력있는 배우 정도로 생각해왔었지.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녀가 정말... 예쁘게 보이더라.

그녀의 패션은 확고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개성이 드러나는데(그녀가 나온 드라마, 영화 모두) 눈여겨 보는 여성분들도 많으실 듯 하다.



***

이 영화의 촬영을 뭘로 했는지 찾아보지 않았는데 자연광을 사용해서일까?

안노 히데아키(<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바로 그>의 실사영화 <Love & Pop/러브 앤 팝>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그렇게 거칠고 매마른 화면은 결코 아니었지만.



****

이 영화를 얘기하기에 앞서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을 죄다 들춰내는 짓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알맹이도 없는 글이 너무 길어져 죄다 지웠다.

개인적으로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를 정말정말 좋아한다.

물론 초기작들도 다 좋아하고.



*****

유어마인드(http://www.your-mind.com) 등의 서점에서 이 책을 판매한다.

물론 들어오자마자 동이 나서 구입이 쉽진 않겠지만...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확인해보시길.


http://your-mind.com/product/detail.html?product_no=2915&cate_no=206&display_group=1

 

키쿠치 오사무가 찍은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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