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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들의 훈련이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파김치가 되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표정이 밝았다.
차에 타더니 '뭔가 해낸 것 같아 좀 뿌듯한 기분이 들어요'란다. ㅎ 그런 기분 나도 알기에 그냥 웃었다.

중학생일 때는 그닥 실감하기 어렵던 고단한 운동선수의 생활이라는 것을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실감하게 된다.
와이프와 내 생활패턴도 바뀌었다.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9시~10시 사이에 아들 훈련 끝날 시간에 맞춰 데려오기 위해 학교로 간다.
훈련이 끝나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우린 최소 10분에서 길면 1시간까지 기다린다.
당연히 퇴근 후 내 시간을 즐길 여유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이 거의 없는 걸 보면 우리가 유난떠는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거 상관없다.
그렇게 차로 데려와서 그저 10분이라도 더 아들에게 자기 시간이 주어졌음하는 바램, 정말 그 바램 딱 하나때문에 데리러 간다.
차로 데려오면 10분이면 되지만 아들이 버스를 타고 오면 최소 40분... 고작 3km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학교 통학이 이처럼 힘들다.
버스타고 오는 시간에 집에 와 씻고 수다도 떨고... 그런 조금의 자유라도 더 주고 싶어 데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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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일 때는 시합나가도 대부분 2박 3일 일정이고, 정말 어쩌다가 3박 4일 일정이 잡혔는데 고등학교 와서는 무조건... 6박7일이다.
6월엔 대회가 두번있으니 사실... 한달의 반 이상을 수업에 빠지게 된다.
매일 9시~10시가 되어야 끝나는 훈련, 토요일에도 대체적으로 훈련을 하고 5월부턴 사실상 일요일도 훈련.
얼마전 석가탄신일 3일 연휴 기간에도 내내 훈련...
전혀 다른 곳에 신경쓸 겨를없이 빡빡한 일정이 아들을 옭죈다.
정작 아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던데 운동밖에 모르는 청소년이 되지 않길 바랬던 우리의 바램은 만만찮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길 바란다는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이렇듯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끝이 없지만...
요즘은 아들이 사격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한번이라도 말렸어야했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봐야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
아들 중학교 졸업하기 며칠전 담임선생님께서 아들에게 제법 장문의 편지를 주셨다.
그 편지 내용은 운동을 선택한 아들을 응원하면서도 결국 공부를 등한시할 수 밖에 없는 선택에 대한 진한 아쉬움의 내용으로 가득찼었다.
그 담임선생님께선 잘 알고 계셨을테지. 한국의 제도교육 하에서 운동선수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리고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한국에서 운동선수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제서야 절감하고 있다.
아들은 얼마전 치룬 시험에서 수학문제가 힘들었다며 인강이라도 제대로 들어야할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수학만큼은 뒤쳐지지 않았던 아들이 이젠 수학이 버겁단다.
자꾸 강조하는 것 같지만, 와이프와 난 아들이 시험성적이 나빠지는 걸 걱정하는게 결코 아니다.
아들이 운동 외적인 무언가에도 흥미를 갖고 정진하는 자세를 잃어버리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이 될 뿐이다.

그런 노파심과 함께 아이들에게 성과를 내도록 몰아부치는 이 나라의 삭막한 학원 스포츠의 현실 역시 절감하고 있다.
대다수의 부모가 그걸 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견 이해가 가면서도 암담함을 느낀다.
훈련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면 아이들을 더 강하게 몰아대길 원하는게 대다수 학부모의 마음이다. 실제로 그렇다.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채 운동에만 전념한 이 과정의 끝에서 다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간의 노고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팡파레가 아니라 '낙오자'라는 낙인이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러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진작부터 하고 있다는거지.
고 1~2학년 때 놀라운 성적을 내다가 3학년 때 갑작스레 슬럼프가 찾아와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지금은 아예 사격을 그만둔 한 선배 이야기를 아들이 해주더라.
아이들은 누군가 느슨해지고 슬럼프에 빠지면 'OO형처럼 되고 싶어?'라고 말한단다.
슬픈 일이다. 정말.



****
삶에서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건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 된다.
내 경우엔 음악과 영화가 그랬다.
비록 지금의 내 직업은 그 두가지와 상관없지만 적어도 그 경험들은

내가 스스로 되돌아보기조차 싫어하는 한심한 내 20대를 그나마 보듬어 안을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자 기억이다.
아들에겐 지금의 사격이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난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맘껏 해볼 수 있게 해주는 것만큼 소중한게 없다는 생각을 해왔다.
슬렁슬렁 농땡이도 부리고, 아이들과 놀러도 가고, 주말이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쇼핑도 즐기고,
연애도 맘껏 하고, 정말 학교가기 싫을 때는 슬쩍 식구여행 핑계로 학교도 빠지게 해주고...
그렇게 빛나는 10대를 즐겁게 보내는 것을 원했다.
지금처럼 10대부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 성과를 내어 성공해야한다는 결과만 중시하는 삶으로

그들의 미래를 지금 결정지어야한다고 몰아대는 이런 풍토가 정말... 답답할 뿐이다.
그리고 내 아들 역시 이런 풍토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진다.



*****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고 정말 중요한 건 아들의 생각과 신념이지.
이걸 모르진 않는다.
육체적으로 많이 고단하지만 아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확실히 사격을 최대한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이점이 정말 고마운 부분 중 하나고.
그저 나이먹어가면서 고단한 아들의 일상을 보니 드는 잡생각일 뿐.
확실히 나도 꼰대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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