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gman / 보그만>

Directed by Alex Van Warmerdam (알렉스 판 바르메르담)
2013 / 113min / Dutch

Jan Bijvoet (얀 베이부트), Hadewych Minis (하드비히 미니스), Alex Van Warmerdam (알렉스 판 바르메르담), Jeroen Perceval (예론 페르시발),

Sara Hjort Ditlevsen (사라 요르트 디트레브슨), Tom Erisman (톰 에리스만), music by Vincent Van Warmerdam (빈센트 판 바르메르담)




*** 스포일러 경고 + ***
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아무런 정보를 접하지 않은채 봤다.
예고편도 보질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링크할 목적으로 예고편을 찾아 봤는데...
예고편에서 너무 많은 걸 보여주더라. 이 영화를 보실 분이라면 예고편은 보지 마시길.


낯선 이가 한 가정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으례 그렇듯 파국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 발을 들여놓은 낯선자가 행하는 일방적인 행위로 인하여 파멸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가정'이라는 대상이 지닌

공고한 계급적 지위가 외부의 다른 가치,다른 철학과 충돌했을 때 드러나는 유약함에 근거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당연히 안전히 보호되어야할 가정의 일방적 파멸을 대단히 불쾌하게 바라 볼 수 밖에 없으면서도

이를 통해 전복적 가치를 찾아내게 되는 아이러니 또한 겪게 된다.
이러한 소재를 다룬 영화를 쉽게 찾을 수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삐에르 빠올로 파솔리니 (Pier Paolo Pasolini) 감독의 <Teorema/테오레마>(1968), 

미카엘 하네케 (Michael Haneke) 감독의 <Funny Games/퍼니 게임>(1997)등을 떠올릴 수 있으며 낯선자의 방문과는 상관없지만 이 영화 <Borgman/보그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요르고 란티모스 (Yorgos Lanthimos) 감독의 <Kynodontas / Doogtooth /송곳니>(2009)와 유사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 자체도 다소 불쾌한 느낌이 강하다는 이야기.


영화는 주인공 카밀(Camiel)이 정체모를 3명의 추적자에게 쫓기어 은둔해있던 숲의 땅속에서 탈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주인공 카밀의 정체, 그리고 그를 쫓던 세명의 정체가 어느정도 드러날 줄 알았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진행되는 사건을 온전하게 해석할 수 있는 부차적인 설명이 전혀 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카밀 일행이 벌이는 기이한 행동과 초현실적인 상황들이

대단히 당혹스럽게 느껴지기 십상인데 딱 한가지 고리를 붙잡아 끌어대니 의외로 영화의 퍼즐이 조금 풀리긴 하더라.
물론 퍼즐이 좀 풀린다 하더라도 내 작은 뇌용량으로는 온전하게 이 영화의 텍스트를 읽는다는게 불가능하지만...

이 영화는 얼핏 보면 우리에게 일상 속에 파고든 악마의 유혹에 빠져 파괴되는 중산층의 모습을 그리는 듯 보인지만 궁극적으로는 

성서적 메타포를 통해 계급간의 반목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분히 유추 가능한 성서적 메타포들로 인하여 이 영화는 에덴동산으로 비유된 리차드와 마리나 부부의 이상적인 가정에 카밀이 끼어들어

마치 성경 속의 뱀처럼 마리나(그러니까 이브)를 유혹하여 금단의 사과를 배어 물게하는 성서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리차드와 마리나 부부를 파멸로 몰아가는 주인공 '카밀(Camiel)'이라는 이름을 찾아보니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Camael (카마엘 또는 카미엘)이라는 천사장(?)의 이름에서 차용된 듯 하며 카마엘이라는 천사에 대한 일부 의견을 보니 카마엘도 타락천사라는 견해가 있더라.

오프닝 시퀀스에서 카밀은 여느 일반적인 은신처가 아닌 도심 근방의 숲 어딘가에 구멍을 파고 위장을 한 뒤 숨어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카밀을 쫓는 이들은 조금의 착오도 없이 정확하게 카밀의 은신처를 찾아내고

길고 긴 창(마치 십자가에서 예수를 찔렀던 롱기누스의 창같은)으로 숲길바닥을 마구 뚫어버린다. 사제복을 입은 신부는 AK 소총을 들고 있고.
굳이 숲 땅속에 은둔하고 있는 모습도 의아하지만 카밀이 추적자들을 피해 탈출할 때의 몰골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예수의 모습과도 일견 유사해보인다. 

땅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 과정이 마치 십자가에 못박힌 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를 연상케 한다는 것.
탈출한 카밀은 네델란드 어느 곳인가의 근교에 위치한 리차드와 마리나의 집으로 들어가 일련의 행위를 통해 마리나를 유혹하고,

나중에 합류한 카밀의 수하들 역시 리차드/마리나의 어린 아이들과 그 보모까지도 아무런 저항없이 자신들의 의지로 통제한다.
이미 이 지점에서 카밀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기 힘들어지는데 몇몇 장면들을 통하여 그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초월적 능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마리나의 꿈을 통제한다든지, 동물(개)에게 간단한 말로서 명령을 한다든지, 누구나 쉽게 자신을 저항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든지하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그것도 묘하게 납득이 가지 않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러한 초월적 능력을 통해 카밀이 단순한 사이비 교주 정도가 아니라 '악마적 존재'에 가깝게 묘사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혹은 현대판 예수의 모습으로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카밀은 리차드와 마리나의 정원사를 없애버리고, 비어버린 정원사 자리에 자기 스스로 지원하여 대놓고 리차드와 마리나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그리고 정원을 정비한다는 목적 하에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대대적으로 정원을 훼손한다. 이는 에덴동산(=중산층 계급)으로 비유되는 듯한

리차드와 마리나 집에 대한 의도적 훼손으로 받아들여진다.
에덴동산을 황폐화하고 이브를 유혹하여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추방되도록 하는 성서 속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는 카밀에게 통상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계급적 인물'인 리차드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는 마리나의 모습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은 나와 타인에게 맹목적 희생을 요구하는 기득권 윤리의 위선과 해악을 상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튼...
기득권을 상징하는 리차드와 내면의 악마성을 드러낸 마리나가 모두 사라졌을 때 땅속에 살던 주인공들과

정처없이 떠돌던 카밀의 수하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상위 계급을 무력화시키고 약자로 대변되는 아이와 보모를 데리고 에덴동산을 떠난다.
이들이 반목하던 사회적 계급은 일시적으로 균형을 이룬 듯 보이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 계급적 균형일까?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서 기득권이 아닌 정원사와 그 와이프조차 무참히 살해한 카밀 일당이 대변하고 있는 듯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 논리 역시

이 영화 속에서는 기괴할 정도로 비틀어져 그려지고 있다.

사실 글을 쓰면서 오히려 내 스스로가 혼란스러워짐을 느끼게 되는데,
그만큼 이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사회적 계급간의 반목으로 볼 수도 있으며, 인간의 내밀한 악마적 본성을 그린 영화로 볼 수도 있으며,

카밀을 현대판 예수로 치환하여 희생을 요구하는 기독교 윤리의 위선과 해악을 상징한 영화로 볼 수도 있다.
그 어떤 해석이든,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언뜻 복잡하고 머리아픈 영화로 받아 들여질 수 있지만 충분한 설명없이 비상식적 상황을 열거하면서도

이토록 놀라운 흡인력을 보여줄 수 있는 탄탄한 만듦새에 감탄하게 된다.



*
이 영화에는 간과할 수 없는 수많은 설정이 등장하지만 그 중 네가지만 간략히 이야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영화 속 리차드와 마리나의 이상적인 가정(부유함, 안정적인 가정)을 보았을 때 느낄 수 있었던 막연한 불안감이다.
그 불안감이란 당연히 이 공간이 결코 더이상 평화로울 수 없으며 카밀과 연관되어 무언가 파국을 겪을 것이라는 장르적 클리셰를 통해 짐작 가능한 예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적인 기득권 세력인 중산층이라면 으례 겪을 수도 있는 위협을 내가 이미 머리 속에 담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번째, 리차드는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자다. 카밀이 영화 초반에 거의 노숙자의 모습으로 방문했을 때 그는 단호히 카밀의 방문을 거절했고,

카밀이 리차드의 부인인 마리나를 자신을 간호했던 간호사라며 거짓말로 아는 척하자 그는 주저함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이후 정원사를 새로 고용할 때 찾아온 지원자 중 한명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거절하며 마리나에게는 '정신나갔냐'는 말을 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 시선을 드러낸다.
이후에 처음과 달리 말끔하게 단장한 카밀이 지원했을 때는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존중하며 정원사로 받아 들인다.

세번째, 보모 스틴은 부모가 부재한(실재로 부재하는 지는 알 수 없다) 불안정한 존재이며

내부적으로는 마리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기도 한다.

네번째, 리차드가 카밀을 정원사로 받아들이고 저녁 초대를 했을 때 유독 와인을 언급하며 와인을 꺼내지 말라고 말한다.

아시다시피 와인은 성서적으로는 일반적으로 예수의 보혈을 의미하곤 한다.(맞나? 내가 비종교인이라...)


**
카밀의 수하 중 한명인 루드비히...역으로 나오는 이가 감독 알렉스 판 바르메르담이다.
이 감독이 86년작이 <Abel/아벨>이던데 아무래도 성서적 메타포를 자주 인용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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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아무런 정보를 접하지 않은채 봤다.
예고편도 보질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링크할 목적으로 예고편을 찾아 봤는데...
예고편에서 너무 많은 걸 보여주더라. 이 영화를 보실 분이라면 예고편은 보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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