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Espers] by Espers
-2004년의 록음악 씬의 특징이라면 '복고'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장르 전반에 걸쳐 복고주의 경향이 대단히 뚜렷했는데, 일반적으로 80년대의 신스팝이나 네오 포크를 차용하던 범주에서 보다 확장되어,

작년엔 본격적으로 70년대의 아트록, 프로그레시브 록, 애시드 포크록등이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Dungen은 이미 그들의 앨범 [Ta Det Lugnt]에서 귀를 의심할 정도로 놀라운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을 재현해냈고,

Essex Green은 이미 열심히 70년대 브리티쉬 포크록을 차용하여 재창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포스트 록이나 익스피리멘털 음악들은 엄밀히 말해서 70년대의 진보 음악의 범주에서 그리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이렇듯 70년대의 진보음악을 끌여 들여 차용하는 것이 음악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히는 뮤지션들의

가시적 해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음악의 순수성을 찾으려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소개하는 Espers 역시 이러한 복고적 성향이 두드러진 그룹이며, Essex Green과 함께

가장 완벽하게 70년대 브리티쉬 포크를 재현한 그룹인 것 같다.
(이들이 브리티쉬 애시드 포크를 완벽히 재현하고 있지만, 그룹의 리더인 Greg Weeks 는 미국 뉴욕 로체스터 토박이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정말 대단히 좋아하는 그룹이며, 이들의 음악은 어줍잖게 흉내내는 차원이 아닌,

깊은 마음 속에서 길어낸 아늑한 느낌을 전해주는 몽롱한 Acid Folk의 정수라고도 할 수 있다.
해외의 리뷰에선 이들을 Donovan이나 Fairport Convention등과 비교한 경우가 있던데,

사실 Donovan이나 Fairport Convention 뿐만 아니라도 이런 애시드 포크는 당시 영국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즐비했다.
다만, 한 두장을 내고 명멸해 간 수없이 많은 그룹들과 비교해도 결코 그 음악적 깊이가 뒤지지 않는

진중함을 드러낸 Espers의 이 음반은 가히 2004년의 록음악씬의 경향과 미래를 한 번에 가늠할 수 있게 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반드시 빼놓지 말아야할 것은 이들이 프랑스의 궁중 포크 그룹인

Avaric(해외 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놀라운 음악적 완성도를 들려준다)과 너무나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팀 버클리나 닉 드레이크의 보이스를 연상시키면서 과거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즐겨 쓰던 음악 재생 장치인

멜로트론까지(악기가 아니라 재생장치임) 다루는 Greg Weeks의 놀라운 재능을 꼭 확인하시길...

 

 

 

 

 

 

32. [Bows and Arrows] by The Walkmen
-아무래도 과거에 음악듣던 버릇이 있어서 인지 난 미국 록음악보다는 영국 록음악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Pixies나 Pavement등을 통해 미국의 인디 록 음악씬이 얼마나 탄탄한 지도 알았고, 그 뒤론 미국의 인디 록도 즐겨 듣게 되었지만,

그래도 난 지금도 영국의 록음악들을 편애한다.
그런데 근래 미국 뉴욕의 음악씬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지금 소개하는 The Walkmen이나 Strokes나 Interpol등은

모두 영국 록음악이라는 느낌이 확실한데 이들이 모조리 미국 뉴욕 출신의 그룹들이라는 거다.
미국의 인디 록씬은 확연하게 네오 거라지 록과 뉴욕 기타 록씬으로 갈리는 듯 한데, 위에 언급한 이들은 모조리 영국적 감수성을 끌어 안고,

그 표현 방식을 미국의 단선적 이고 다소 촌스러운 록음악이 아닌, 모던하고 메트로폴리탄적 감수성을 표현하기

딱 좋은 영국 록음악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덕분에 이 그룹들은 누가 들어도 영국 그룹일 거라는 확신을 갖게 하며,

이러한 특징으로 이들은 자존심 센 영국의 음악 잡지에도 매우 호평을 받았다.
The Walkmen은 Strokes나 Franz Ferdinand처럼 거친 질감의 기타 사운드나 댄서블한 리듬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이들 The Walkmen은 되려 영국의 70년대 언더그라운드 록음악(프로그레시브)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느 뉴욕 씬과 달리 수려한 건반 연주도 놀라운 흡입력을 발휘하며, 보컬의 터무니없이 진지한 보이스 컬러와 감정을 선동하는 듯한

드러밍은 가히 뉴욕씬의 최고급이라고 할 만한 퀄리티를 들려 준다.
개인적으로 뉴욕 씬의 음악 중 가장 좋아하는 그룹이며, 2004년 작인 [Bows and Arrows]도 좋지만

이 전 작인 2002년 작 [Everyone Who Pretended to Like Me Is Gone]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완성도를 갖고 있다.
어쨌든... 이제 뉴욕씬의 음악이라면 어느 정도 그룹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그렇게 무리는 아닐 듯 싶다.


 

The Walkmen - The Rat (Official Video)

 

 

 

 

 

 

33. [Good News For People Who Love Bad News] by Modest Mouse
이 음반이 이제 등장한다.
사실 지금 소개하는 순서가 순위의 의미가 강했다면, 이 음반은 진작에 올려졌을 것이 분명할 만큼 본인의 애장 음반이기도 하다.
메이저 레이블로 스카웃 될 때까지도 이들은 인디 록씬의 '희망'이었고, 메이저 레이블 로 스카웃된 후에도 이들은

상업적인 사운드와 전혀 타협하지 않은 채 여전히 변함없는 음악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사실 본인이 영국의 록음악을 지독하게 편애하면서도 결코 미국의 인디 록씬을 무시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Modest Mouse, Pixies, Pavement, Flaming Lips, Mercury Rev, Elf Power등등등...과 같이 무수히 많은 그룹들 덕분이다.
극소수의 그룹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그룹들이 미국 록의 기저에 깔려 있는 컨트리 록의 혐의에서도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미국 록의 단점일 수도 있는 단선적인 곡구성을 담백하게 구성하면서,

무언 중에 선동적인 감성적이고 건강한 멜로디를 구사하고 있다.
Modest Mouse의 본작의 1~3번 트랙으로 이어지는 이 놀라운 건강함은 들어도 들어도 들리지 않는 매력을 갖고 있다.
메이저 레이블인 Epic을 통해 2004년작인 본작을 발표하면서도 결코 무뎌지지 않는 그들의 인디적 감수성... 그저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게다가 모두가 바보가 되어버리고 있는 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미국을 통쾌하게 조롱하고 있는 음반 제목만 보더라도...

이들은 결코 흔한 딴따라가 아니다.


Modest Mouse - Float On

 

 

 

 

 

 

34. [Final Straw] by Snow Patrol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화 한 편을 머릿 속에서 만들게 되는 음악들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4인조 그룹인 Snow Patrol은 바로 그러한 그룹이다.
이들의 음악은 미국의 인디록과 상업적인 록음악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진솔하고 순수한 감수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와 동시에 결코 촌스럽지 않은 멜로디 라인을 들려주는 그룹이다.
첫곡 에서부터 언젠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낯익은 멜로디가
포근하게 실려 들여온 후 에서 들려지는 단순하 리프의 직선적인 록음악은 영리하게도 듣는 이의 귀와 가슴을 만족시킨다.
이렇듯 평범하게 들리는 록음악이 두고두고 사람을 오디오 앞에 붙잡아 놓고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멜로디를 마구 날려주려면

어느 정도의 음악적 내공을 갖고 있어야 하는 지도 무척... 궁금해진다.
적당히 비트있고, 적당히 감상적인... 그러면서도 결코 촌스럽지 않은 이 그룹은 2004년의 보석과도 같은 음반 중 한 장이다.
*
다섯번째 트랙인 는 제가 좋아하는 야구 게임... EA Sports가 만든 MVP Baseball 2004에도 수록된 곡이다.
뭐... 이 게임에서부터 이 곡은 기가막히게 잘 어울렸다(한 게임이 끝나고 다음 날 일정을 넘어가기 전 메이저 리그 팀들의 로고가

빠른 속도로 점멸 훼이드 아웃되며 이 곡이 시작된다. 크아~ 멋진 연출이다)

 

Snow Patrol - Spitting Games

 

 

 

 

 

35. [Smile] by Brian Wilson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 음반에 전적으로 박수를 칠 수는 없다.
이 음반은 그간 내가 선호하는 음악의 범주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전형적인 미국 팝음악에 가깝다고 봐야 하니까.(그것도 60년대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음반을 듣지 않느냐...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거다.
난 지금도 이 음반을 듣고 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몇번 반복해서 듣고는 한다.
때로는 들려오는 선율보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의 비하인드를 알고 더 매료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아마 이 음반은 내게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브라이언 윌슨은 바로 그 유명했던 미국의 Surf'Rock 그룹인 Beach Boys의 멤버였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영국의 비틀즈와 걸작 퍼레이드를 벌일 즈음, 브라이언 윌슨은 바로 이 음반 [Smile]을 준비하고 있었고

실제로 라는 곡까지 거의 다 만들어 놨었다. 게다가 라는 싱글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고, 이 음반의 데모를 들어본

레오나드 번쉬타인 같은 위대한 작곡가는 같은 곡이 20세기의  중요한 곡으로 위치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브라이언 윌슨은 Beach Boys에서 쫓겨난다.
이 놀라운 팝 싱어 송 라이터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게다가 설상가상 [Smile] 테이프는 화재에서 유실되어 버렸다.
결국 브라이언 윌슨은 회심의 프로젝트를 포기했고, 그로부터 수십년이 흐른 2004년.
드디어 브라이언 윌슨은 자신이 애당초 희망하고자 했던 대로 [Smile]을 완성했고,
2004년의 가장 위대한 음반으로 미국의 거의 모든 음악 매체를 통해 찬사를 받게 된다.
이 음반에는 미국 팝 음악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멜로디로 들려줄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들려주는 이 음반은, 라이벌이었으나 결코 넘을 수 없었던 거대한 벽 비틀즈에 좌절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던 브라이언 윌슨의  작가적 고집이 그대로 담아있는 음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이 음반을 자꾸 듣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받아들이지는 못한 채 말이다.
*
브라이언 윌슨은 2001년 그를 기리는 수많은 뮤지션들과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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